엘살바도르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냅니다.
지난번 메일에서 화산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죠. 과테말라에서의 마지막 등산, 바로 푸에고 화산을 촬영하기 위한 등산이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10일째 화산이 분화를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어서 걱정하며 등반을 했고, 저녁까지 날씨가 나쁘고 비까지 내려서 용암은 고사하고 산 자체도 못보는게 아닌가 했었습니다. 그런데 밤 10시경부터 날이 맑아져 별들과 함께 푸에고 화산을 볼 수 있었고, 비록 용암이 평소처럼 분출되지는 않았지만 용암의 그 붉은 빛이 나타나주어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막 엄청나게 분화를 하는 화산이라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과테말라를 떠난 후 지금까지도 이 푸에고 화산은 분화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요. 사실 경제적으로만 가능하다면 이번 중미 여정의 끝에 한국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서 한번 더 촬영하고픈 마음도 있습니다. 그때쯤이면 다시 분화하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역시 비용이 문제인지라 지금은 일단 고민만 하고 있는 단계가 되겠습니다.
화산 등산은 혼자 못하고 가이드와 가야하다보니 그룹 투어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예상보다도 인기가 너무 많더군요. 알고보니 최근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올해 꼭 가야할 곳으로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를 꼽고, 거기 가면 꼭 이 화산 등산을 하라고 소개했다고 하네요. 하루에만 십여그룹이 등산을 하고 있었고, 제 그룹은 인원이 3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등산이 그렇게 즐겁진 않았달까요. 나만의 페이스로 즐기듯 올라가야되는데 인간열차 마냥 줄줄이 올라가려니까 좀 그랬습니다. 더하여 1박2일 등산치고 꽤나 힘든 코스였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 더 힘들기도 했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특히 아카타넹고 정상에 올라가는 새벽 등산은 꽤나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기에 만족합니다. 과테말라는 지금까지도 중미 여정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든 나라입니다. 과연 앞으로 남은 나라들이 과테말라보다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화산 등산을 끝으로 과테말라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저는 엘살바도르로 향했습니다. 안티구아에서 엘살바도르의 도시 산타아나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의 거리로 가깝습니다.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을 이용했는데 과테말라 국경에서 몇몇 승객들의 출국 도장을 잘못 찍어주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가 2월2일이었는데 1월 도장을 바꿔끼지 않아 1월로 찍어버렸더군요. 와중에 한 프랑스 커플은 벨리즈에서 과테말라로 육로 국경을 넘을때 입국 도장을 안찍었더군요. 그래서 1인당 100불이라는 큰 돈을 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예전에 아프리카의 나라 베닝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답니다. 벨리즈 국경은 저도 건넜는데 입국 도장 찍는 곳이 제대로 표시가 안되어 있고, 그냥 거리로 나가는데 아무도 막는 그런게 없어서 헷갈릴 수 있겠다 싶더군요. 한국에서는 상상이 잘 안될 수 있지만 의외로 세계 나라들 중에 이렇게 허술한 국경이 많답니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입국 도장 찍는 곳을 찾아야만 합니다.
엘살바도르의 수도는 산살바도르인데 산타 아나라는 도시로 간 이유는 이 도시가 좀 더 작으면서도 위치가 좋고, 훨씬 안전해서 여행하기 좋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살바도르가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수도인 산살바도르가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해서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산타 아나에서 첫 이틀을 머무르며 엘살바도르에 적응 했는데요. 이웃 과테말라와 달리 여행자들이 현격히 적다보니까 현지인들이 외국 여행자들에 더 친절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지, 산타 아나 근처의 화산 등산을 하러 갔을 때는 하루에 한 그룹만 등산한다는 인터넷 정보와 달리 열 그룹이 넘게 등반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 사람들이 잘 안가는 지역도 담아보고 싶어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 수치토토라는 곳을 방문했는데요. 그곳 숙소 사장님은 한국 사람이 여기 온 건 니가 처음이라며 놀라시더군요. 중국인, 일본인은 온 적 있는데 한국인은 처음 본다시며. 그런데 사실 이곳도 그렇고 엘살바도르가 전체적으로 그랬는데 뭐랄까 고만고만하달까요. 사람들도 좋고 참 따스한 나라지만 막 이 나라만의 뭐라고 할만한 그런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엘살바도르 여행 꼭 해야지! 하게 만드는 한 방이 부족하달까요. 이는 엘살바도르를 대표하는 서부 지역인 '루타 데 플로레스'를 여행하면서도 느낀 부분이었습니다. 여행하기도 좋고 편하고 자연도 좋기는 하지만 막 우와 하게 만드는 그런 풍경은 없었죠. 하지만 오늘 이 지역이 자랑하는 일명 '일곱개의 폭포' 등산을 했는데 그건 좋았습니다. 폭포들이 막 거대한건 아니지만 매력이 있었어요. 물에 흠뻑 젖는다고해서 사실 카메라 걱정에 망설였는데 촬영하러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일 다시 산타 아나로 돌아가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엘살바도르는 8일 일정으로 끝내게 되네요. 벨리즈는 더 있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짧게 있었다면 엘살바도르는 이만하면 됐다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벨리즈 다음으로 중미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기도 하고요. 더 보려면 볼 수 있는 지역도 있긴 했지만 경제적 문제도 있고하니 여기 쓸 돈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더 쓰자.. 이런 마음으로 엘살바도르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온두라스입니다.
과테말라에서, 이곳 엘살바도르에서. 저처럼 중미 횡단을 하며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온두라스 간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부 약속이나 한 듯 엘살바도르 다음에는 니카라과로 갔죠. 엘살바도르로 오는 차 안에서는 어떤 여행자들이 '온두라스는 다들 스킵하지' 라는 대화를 듣기도 했습니다. 중미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들이 돌아서일까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딱히 주변 나라들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온두라스에 꼭 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30년전 제가 살았던, 제 인생 최초의 외국이었던 나라니까요. 물론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악명 높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말이죠. 온두라스 또한 엘살바도르와 비슷하게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뭔가는 없는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여행자들이 죄다 온두라스를 피하는 것을 보니 어쩐지 오기가 생긴달까. 내가 제대로 온두라스를 담아서 보여주겠다! 뭐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의 어린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한 나라니까요.
온두라스의 첫 목적지는 마야 유적지인 코판이 될 예정입니다. 30년전에 학교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입니다. 얼마나 많이 달라져있을지 궁금합니다. 16살때 갔던 곳을 30년이 지나서 찾게 될 줄은 몰랐네요. 어쩐지 좀 뭉클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저는 사진가니까, 사진으로 잘 담아 제 마음을 표현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온두라스에서 전하도록 하지요. 케이채의 모험은 2월에도 계속됩니다...!
2025년 2월8일, 케이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