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테말라에 있습니다.
지난번 소식을 전한 후 며칠 더 벨리즈에 머물렀습니다. 바다를 떠나 내륙으로 들어갔죠. 이번에는 벨리즈의 새들을 만날 시간이었습니다. 산 이그나시오라는 마을 근처에 블랙 락 롯지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새들을 촬영할 수 있다고해서 이틀을 머물렀습니다. 새에 특화된 산장이다보니 시설에 비해 가격이 비샀는데요. 새들을 촬영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한 셈인데 가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이드들은 제 기대에 비해서는 좀 실력이 없었지만, 서당개 3년이라고 저도 새를 보러 제법 다녔다보니 예전보다 실력이 늘어서 혼자서도 새들을 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산속 깊숙이 있다보니 그들의 전용 식당에서밖에는 밥을 먹을 수 없어 모든게 비싸고, 그래서 끼니도 굶어야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새들을 만났으니까 다행입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사진은 못찍었다면 속이 쓰렸겠지만 말이죠. 물론, 덕분에 더더욱 긴축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산속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벨리즈를 떠났습니다. 산 이그나시오가 과테말라의 북동쪽 국경과 가깝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 과테말라로 넘어가기로 했죠. 드디어 이번 여정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었습니다. 원래 멕시코에서 벨리즈도 육로로 갔어야는데 쿠바에 갔다오다보니 비행기를 타게 되었죠. 역시 땅에서 국경을 넘어야 더 재미가 있습니다. 벨리즈와 과테말라 국경은 생각과 달리 굉장히 현대적이었고, 기다린 시간도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더하여 놀란 것은 과테말라 입국할 때 짐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역은 짐검사를 너무 열심히해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는데 뭘 가지고 나가는지 가지고 오는지 신경 안쓰는 국경은 오랜만이었습니다. 단지 벨리즈는 출국할때 출국 세금이라며 20불을 내게 했죠. 시작부터 끝까지 달러를 뺃어가는 벨리즈입니다. 그런면에서 역시 좀 미국스러운데가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과테말라에서는 가볍게 입국 도장을 받았고, 그렇게 또 2시간을 달려 플로레스에 닿았습니다. 이태리는 아니지만 과테말라에서도 유명한 도시입니다. 과테말라가 자랑하는 마야 유적지, 티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유명한 유적지인데도 티칼은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들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어설픈 느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입장권을 실제 유적 입구 몇킬로 전에 팔고 있어서 저처럼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려는 사람은 미리 티켓을 사두어야 했습니다. 플로레스에 먼저 들린 이유기도 한데요. 이곳 은행에서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별 문제 없이 티켓을 구입했고, 버스 터미널에서 티칼로 가는 버스를 찾았습니다. 과테말라 대중교통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이 지역은 관광 셔틀이라고해서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버스 서비스가 많은데, 저는 그냥 현지인들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들 안내해주어서 티칼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무탈하게 유적지에 닿았습니다. 유적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정글 롯지라는 곳에 이틀밤을 예약해두었는데요. 이른 아침과 저녁에 티칼을 촬영하고 싶어 구해둔 숙소였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유적지 입구 앞에 있으니 하룻밤 10만원의 비싼 숙박비를 자랑했는데.. 그럼에도 이 숙소에서는 제일 싼 방이라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습니다. 모기도 참 많았죠. 하지만 위치 때문에 온거니까요. 이곳에 머무르며 티칼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몰은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요. 티칼에 새벽과 저녁에 입장하려면 기본 입장권 외에 추가로 일출 일몰 입장권을 사야하고, 무조건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는데요. 표 검사를 굉장히 느슨하게 해서 누가 그냥 슥 들어가도 모르겠다 싶기는 했습니다. 이런면에서 멕시코와 좀 많이 달랐달까요. 과테말라하면 티칼이라 사람이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멕시코와 달리 너무 선선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과테말라라는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심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야 유적지를 멕시코에서 너무 많이 봐서 사실 이제는 식상하지 않을까 했는데, 티칼은 뭔가 티칼만의 매력이 있더군요. 제가 멕시코에서 가장 좋아했던 마야 유적지인 칼라크물과 비슷하게 정글 깊숙하게 있는데, 실제 위치가 칼라크물과 가까운 편입니다. 두 마야 부족이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사이가 나빠 전쟁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또 서로 닮은 점도 있나 봅니다. 어쨌든 마야 유적 이제 뭐 더 있겠나 했던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었습니다. 정글속에서 만난 귀여운 코아티 친구들과 새들이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티칼을 떠나 서서히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첫번째로 닿은 곳은 란퀸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세묵 참페이라는 유명한 장소가 있는데요. 자연이 만든 수영장이랄까요. 근처에 강이 흐르는데 그 강물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 아래를 지나가면서 푸른 색의 물이 차올라 마치 어느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수영장 같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곳이 과테말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들 한다는데요. 직접 보기 전에는 기대 반 실망할 준비 반이었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주말에 방문을 했는데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테말라인들이 많이 관광을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어떤 나라들은 외국인들만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현지인들이 자기 나라를 관광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는 생각을 합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이 푸르른 수영장을 즐기고 있어서 보기 좋았습니다. 비록 덕분에 제가 사진을 찍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요. 티칼에 이어 세묵 참페이까지.. 과테말라의 자연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이 있달까. 멕시코에서는 사실 조금 아쉬운 경험이 많았는데 과테말라는 바로 저의 기대 그 이상의 풍경을 만났습니다.
세묵 참페이를 떠나 닿은 곳은 비오토포 데 케찰. 케찰의 숲이었는데요. 케찰은 과테말라의 화폐 단위이기도 한데, 이 나라를 상징하는 새의 이름입니다. 보기 어려운 새들 중에서도 특히나 보기 어렵다고 알려진 새인데요. 그만큼 아름다워서 꼭 한번 사진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케찰이 서식하는 곳은 여럿이지만 이 지역이야말로 가장 케찰을 볼 확률이 높다고 해서 머무르기로 했고, 란치토 데 케찰이라는 숙소가 있어서 이틀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세묵 참페이나 그 전의 티칼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났는데, 여기 오니 정말 외국인이 없더군요. 제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가이드가 놀라며 여기 온 한국인은 니가 처음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람이 없냐면 그것은 아니었는데요. 과테말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들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나라를 상징하는 새니까,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는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덕분에 이곳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 다양한 과테말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 너무 신기해하고 대화를 하고들 싶어하시더라고요. 여러 가족들과 인스타 주소를 교환하고 어떤 분들은 본인들 도시에 오면 연락하라고 초대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과테말라분들이 무척 정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클라우드 포레스트, 그러니까 운무림으로 이루어져있는데요. 그 덕분에 걷는 것만으로도 폐가 정화되는 것 같은, 너무나 아름다운 녹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걸어다녔지만 사실 가장 큰 목표를 케찰을 만나는 것이었죠. 첫날에 몇시간을 걷도록 케찰은 커녕 아무 새도 만날 수 없어서 기대치가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였는데요. 숙소 근처로 돌아왔을때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 책 케이채의 모험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텐데 예전에 아마존에서 나무늘보를 찾아 다닐때도 이런 적이 있거든요. 깊은 정글 속에서는 없다가 숙소 돌아오니 코앞에 있는 그런 경험이 여러번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정말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죠. 특히 하늘을 나는 모습이 정말 컬러풀한데 앉아있는 모습만 촬영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만나고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번 와서도 못보고 가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도 서식한다고 하니 이번 여정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어봅니다.
아름다운 케찰의 색을 가득 담고 숲을 떠나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코반이라는 과테말라 중부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관광지라곤 할 수 없는 곳, 단지 관광객들의 옥천 허브 같은 곳이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스쳐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도 내일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서 하룻밤 이곳에서 머무릅니다. 내일 가게 될 곳은 쉘라라는 도시로 과테말라 제2의 도시이자,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거기서도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나 모르겠네요. 한다면 가서 한번 촬영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2025년에, 새해에 전하게 되겠네요. 과테말라에서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까요. 또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담고, 여러분에게 전하겠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4년 12월30일, 케이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