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두번 갈 줄이야.
2011년에 쿠바에 갔습니다. 제가 뉴욕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였죠. 한국에 가면 너무 멀어지니, 가까운 뉴욕에 있을때 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오바마 정권이었고, 쿠바가 개방된다, 쿠바에 변화가 온다는 이야기들이 한창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쿠바의 모습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 전에 사진으로 담아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떠날 여정이었습니다. 과연, 아바나를 비롯한 쿠바는 놀라운 매력으로 저를 사로잡았고, 제가 무척 좋아하는 사진들을 남겼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저의 첫 책 <지구조각 시리즈>의 한 권이 쿠바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해도 다시 쿠바에 가게 될 거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새로운 나라를 담으려고 하다보니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이란 정말 예측불허입니다. 13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쿠바에 갔으니 말입니다.
지난 편지를 보낸 후 칸쿤에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짧은 거리에 쿠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만으로 모든 것은 달라져버렸죠. 쿠바는 어느 한구석도 멕시코 같지 않으니까요. 13년이란 세월이 길기는 길었나 봅니다. 공항부터 아바나 시내까지. 전부 다 보았던 풍경인데 마치 새로 보는 것처럼 생경하기만 했습니다. 뭐가 달라져서는 아닙니다. 쿠바는, 적어도 겉모습은, 참으로 변화가 느린 나라니까요.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저 또한 쿠바라는 나라를 저의 사진으로 기억하고 있었나봅니다. 그러니까 다시 눈앞에 펼쳐진 쿠바의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었죠.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사진이란 기록이 아니니까요.
아바나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바로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두번째 쿠바에서는 그때 가지 못했던 도시들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씨엔푸에고스, 까마궤이, 그리고 산티아고 데 쿠바라는 세 도시를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정말 마음에 드는 곳들이었죠. 사실, 쿠바는 어디를 가나 풍경이나 건축이 압도하는 곳은 아닙니다. 아니, 압도할 건축이 있기는 한데 보존을 못해서 거의 무너져가고 있죠. 그렇다보니 쿠바를 여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딱히 쿠바에 올 이유가 없습니다. 이 작은 도시들에서 이제 아바나에서는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쿠바 사람들의 넉넉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쪽 끝에 가까이 있어 쿠바 여행자 대부분이 들리지 않는 산티아고에 간 것은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아바나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였으니까요.
13년전에는 아이폰3gs를 쓰던 시절입니다. 인터넷은 당연히 안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쿠바에서 10일을 있으면서 제 얼굴이 나온 사진 한 장을 안찍었습니다. 구글맵이 있을리 없으니 그냥 감으로 걸었죠. 그래서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구글맵으로 계속 살피며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보니 생각보다도 쿠바가 참 크다.. 싶었습니다. 지구에서 17번째로 큰 섬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쿠바라고 하면 딱 큰 도시들 5-6곳 정도만 떠올리는데 그 외에도 작은 도시, 마을들이 참 많더라고요. 쿠바가 지금과 같은 제제를 받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다면 나라 전체를 여행하는 사람들도 더 많았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쿠바가 어렵다는거야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13년전에도 쿠바가 어렵다고 했죠.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까, 정말 어렵더군요. 쉽지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두번째 쿠바에서의 일주일. 가장 느꼈던 점이 사람들이 덜 행복해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2011년에도 풍요로운 환경은 아니었지만 넉살좋고, 작은 것에도 웃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다들 표정이 어둡더군요. 세월이 흐르며 제가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인가 싶어서 잠자코 있다가 나중에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제 그 생각이 맞다고 인정해주었습니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이 엠바고를 걸면서 특히나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거기에 코로나가 터지니, 관광업이 먹고사는 거의 전부였는데 수입이 급격하게 줄었고, 바이든 정부는 쿠바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바나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았지만, 지방 도시들에 가면 레스토랑들도 문을 닫거나 메뉴가 현격히 줄어둔 곳이 많았습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졌던 공간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거리에 연주자들도 예전만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죠. 13년전에는 아바나 골목 골목마다 자꾸 호객꾼들이 나타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이 오늘밤이야!'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젠 그런 호객꾼들도 거의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바나에는 그나마 러시아 단체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는데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를 찾는 모양입니다. 작년에 코카서스3국에 갔을때도 그쪽에서 러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비슷한 흐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래는 쿠바를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은 캐나다인들이라고 하는데요. 요즘은 예전만큼은 안온다고 들었습니다.
사진가로서 쿠바의 변화를 이야기하자면, 예전보다 사진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일단, 그 13년의 세월 사이 스마트폰의 시대가 왔습니다. 당시엔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 없어서 여전히 공중전화 부스에 사람이 있었는데, 이젠 쿠바인들 대부분이 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도 접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사진에 우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사진 찍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젠 있더군요. 예전에는 인도와 비슷하게 어찌보면 '사진 찍기 쉽다'고들 많이 가기도 하는 나라였는데, 물론 저는 그런 나라들일수록 조심해서 촬영해야한다는 생각이지만, 어쨌든 그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람들에게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일단 제가 웃기게 생긴 동양인이라, 그거 하나는 여전히 13년의 세월을 넘어 먹혀주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절 보면 신기해하고 놀라고 웃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트리니다드라는 도시도 13년만에 갔죠. 그곳에 갔을때 떠오른 것은 광장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였습니다.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었는데, 설마 지금도 계시진 않겠지 했었죠. 둘째날 오후 광장에 나갔는데 기타를 치는 할아버지가 계시길래 다가가보았는데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가 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때 그 분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3년전에도 여기 계셨냐고 물어보니 늘 이 자리에 계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많이 늙으셔서 그렇지 아무래도 그때 그분이 맞는 것 같아 혼자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분의 더 짙어진 피부색과 주름과 흰머리를 보면서 13년의 시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기도 했습니다. 쿠바가 참 많이 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단지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쿠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15일의 시간을 보내고 어제, 쿠바를 떠나며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알던 쿠바의 마지막, 그 끝자락을 2011년이 아니라 2024년에, 지금에서야 만난 것 같다고요. 많이들 생각하는 '그' 쿠바가 종말을 앞두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정부 욕을 하고, 2011년에는 넘쳐나던 체게바라나 카스트로의 그림도 거의 사라진 현재. 그냥 저의 기분이지만 앞으로 5년안에 쿠바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올지, 조금씩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쭉 이어왔던 그 '과거의 쿠바'가 이제 끝날 것이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마지막 한 페이지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 제가 이번에 다시 쿠바에 왔나 봅니다. 저는 우연을 믿지 않거든요. 저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2번 방문한 국가는 흔치 않은데 쿠바가 그 중 한 곳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계획에는 없었지만 저에게 더 소중해진 나라, 쿠바입니다.
쿠바에서 담아낸 좋은 사진들을 안고, 94번째 나라 벨리즈에 닿았습니다. 아바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칸쿤으로 와서 칸쿤에서 벨리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던 어제. 황당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칸쿤에서 벨리즈가는 비행기를 타는게 문제였습니다. 각기 따로 산 비행기표라 칸쿤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은 뒤, 벨리즈로 가는 비행편을 다시 또 타러 가야하는 상황이었죠. 두 비행편 사이에 시간이 3시간 조금 안되어 타이트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칸쿤 국제 공항이니까 할 수 있겠지 생각하고 표를 샀었죠. 터미널2에서 내리는데 벨리즈 가는 비행기는 터미널1이라고 했으니, 아무리 멀어도 금방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바나에서 뜬 비행기가 다행히 그리 늦지 않게 칸쿤에 도착했고,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까지 찾으니 2시간여가 남은 상황. 이제 터미널1으로 가서 체크인을 하면 되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런데 터미널1으로 가는 방향을 아무리 찾아도 표시가 없어서 공항 직원 한명에게 물어봤죠. 터미널1이 어디냐고. 그랬더니 항공사 이름을 묻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이 공항에는 터미널1이 없다고 하는거에요. FBO라는 다른 공항으로 가야한다며 그 공항은 여기서 40분 거리에 있다고 말하니 저는 황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륙이 2시간도 안남았는데 이걸 어쩌나.. 하고 있으니 어서 택시를 타고 가보라며 저를 밖으로 인도하더니 공식 택시 직원에게 택시를 부르라고 하더군요. 둘이 대화를 하더니 택시비가 100불이랍니다. 바가지다.. 생각은 했죠. 하지만 너무 급하니, 그리고 40분 거리라니 약간의 바가지라고 생각하고 내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한 택시가 나타났고 저는 서둘러 택시에 올랐습니다. 비행기가 두시간도 안남았으니 서둘러 달라고 말했는데 기사는 천천히 운전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5분이면 가는데?"
알고봤더니 FBO라는 다른 공항이 맞기는 맞는데 그냥 옆 터미널처럼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공항이었습니다. 분명 무료 셔틀버스도 있었을거에요. 그런데 다른 공항이라며, 40분이 걸린다며 정신을 빼놓으니 비행기를 놓칠까 싶은 마음에 눈뜨고 사기를 당한 셈이 되었습니다. 도착해보니 공항이 경비행기를 위한 아주 작은 곳이라 체크인에서 게이트까지 2분도 안걸리는 거리라 더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죠. 멕시코나 이런 지역은 공식 직원들도 조심해야되는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사기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인터넷도 안되는 상황이었다보니.. 멕시코가 뒤늦게 저에게 이별 선물을 청구한 셈입니다.
날이 날인지, 그렇게 도착해서 벨리즈로 가는 비행기 체크인을 하는데 또 이번에는 기내 반입 짐이 1개 밖에 안된다며 트집을 잡더군요. 저는 기내반입 가방이 2개였거든요. 그런데 부피가 작아서 두개 합쳐야 하나 정도 되는 수준이라 그간 한번도 문제된 적이 없는데, 그렇게 얘기를 해도 기내반입 1개값만 냈다며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35불을 내고 탔는데, 탈때보니 비행기가 10명 정도 타는 아주 콩알만한 비행기인데, 승객은 저 포함 3명 밖에 없었습니다. 자리가 이렇게 남아도는데 굳이 그 돈을 받아먹다니... 멕시코에서 40일간 좋은 기억 뿐이었는데 제가 잊지 못하게 해주려고 그랬나.. 아주 화끈한 마지막 하루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좋은 일만 생각하자면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고, 예정대로 벨리즈에 도착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벨리즈는 중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나라인데요. 약간 푸에르토 리코 마냥, 미국의 위성도시 느낌입니다. 물론 현지인들의 원래 언어는 크레올레라는, 캐리비안의 언어입니다만 모든 간판과 광고판이 영어로 되어있으니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항에서 바로 항구로 갔고 거기서 배를 탔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곳, 까예 까꺼로 가기 위해서였죠. 영어 철자를 보면 카예 카울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은 까예 까꺼.. 정도로 발음하는 듯 하더군요. 작은 섬인데 육지보다 섬들이, 바다의 아름다움이 유명한 벨리즈를 경험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해 여기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근처의 호찬 보호구역이라는 아름다운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했습니다. 바다에서는 사실 사진을 못찍으니.. (수중 카메라가 없는 관계로) 제게는 약간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경험하는 셈치고, 영상 조금 찍을 겸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블루 홀이라는, 이곳에서 유명한 푸르른 바다를 촬영할 예정입니다. 원래는 헬기를 타고 촬영하고 싶었는데 400만원 넘게 달라고해서 도저히 이번 펀딩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여럿이 같이 타는 경비행기에서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창문도 있고 경비행기는 날개가 있어서 사진이 잘 나올진 모르겠지만 안타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하기로 했죠. 단지 어제부터 이 지역은 계속 비가 왔다갔다 하고 있어 내일 날씨가 어떨지가 걱정이긴 합니다. 뭐 그건 제가 컨트롤 할 수 없으니까요.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미국의 위성도시 같은 벨리즈는 미국 달러가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나라라 물가가 비쌉니다. 미국 물가인데 중남미에서 미국 물가니 너무 비싸게 느껴지죠. 윤석열 때문에 환율도 올라 더 타격이 큽니다. 그래서 벨리즈는 6일만 머무르고 과테말라로 향할 예정입니다.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사진을 잘 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게 될 과테말라로 또 나아가려고 합니다. 다음 편지는 아마 그곳에서 쓰게 될 것 같네요. 한국은 날이 무척 추울텐데 이곳은 덥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보내는 더운 연말입니다. 눈이 얼마나 그리운지, 한국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은지 말로 다 못하지만 오직 사진만을 보고 앞으로 또 나아가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과테말라에서 만나요.
2024년 12월18일,
케이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