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를 떠납니다.
첫 메일이 멕시코와의 작별인사가 되어버렸네요. 12월이 되었습니다. 다들 무탈히, 한해를 마무리 할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 저는 12월의 시작과 함께 40일간의 시간을 보낸 저의 93번째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유카탄 반도에 있는 툴롬이라는 해변 도시의 호스텔 침대입니다. 칸쿤 공항으로 가는 새벽 1시 버스를 타야하기에 준비를 마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10월23일밤,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며 시작된 이곳에서의 사진 작업이 오늘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조금 아쉬움이 남은 시간이었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의 문제는 아니지만, 저와의 상성이 조금 안맞았다고 해야할까요? 단지 제가 제 자신에게 너무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의 사진 작업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날씨가 안도와줄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저의 부족함 때문이 아닌가 자책합니다. 스트레스로 잠못드는 밤도 많았지만, 앞으로 더 좋은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으며, 매일매일 또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마음에 든 사진은,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을 시간들은 역시나 '죽은 자의 날'이었습니다. 10월 하순에 떠난 이유가 바로 이 죽은 자의 날을 촬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디로 가서 죽은 자의 날을 촬영할지가 고민이었는데요. 원래는 와하카라는 도시에 가려했지만 너무 규모가 큰 것 같아서 좀 더 작은 마을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파츄쿠아로라는 지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큰 호수가 있고 호수 위에 자닛지오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그 섬의 무덤가에 죽은 자의 날이 무척 아름답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연 소문대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단지 문제라면 정보와 달리 이곳도 무척 인기가 많은 지역이 되어있었다는 사실이었죠. 와하카나 멕시코시티 정도는 못될지 모르겠지만 관광객이 여기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죽은 자의 날 당일밤만큼 저에게 인상을 남긴 것은 죽은 자의 날 전날, 그 전날이었습니다. 미리 도착해서 4일을 머물렀기 때문에 무덤들을 먼저 가보았는데, 그때 무덤을 청소하고 노란 메리골드 꽃을 장식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죠. 오히려 죽은 자의 날을 준비하는 생생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합니다.
파츄쿠아로까지 올라온 길에 멕시코 중부의 도시들도 들렀습니다. 모렐리아를 시작으로 컬러풀하기로 소문난 구아나후아토, 그리고 산미구엘데아옌데 모두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긴 버스 여정을 통해 와하카로 건너왔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더 남쪽으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로 향했습니다. 이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멕시코가 생각보다도 더 안전하다는 사실과, 많이 발전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중남미에서 아마도 가장 발전한 나라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더 그랬습니다. 7년전에 남미를 여행할 때는 제대로 된 커피를 몇주 이상 못마실 때도 있었는데, 멕시코는 어느 도시를 가도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무척 편리하고 또한 안전했습니다. 가끔 연발, 연착을 하기는 했지만 무척 양호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지역을 버스로 이동했는데 멕시코에서 버스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세상 일은 모르는거지만 대체적으로 안좋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느꼈습니다.
산크리스토발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마야의 흔적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팔렌케부터 시작해서 치첸잇자까지, 내노라하는 마야 유적지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유명한 유적지들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인상에 남았던 것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적들이었습니다. 메리다 근처에 있는 우슈말은 건축적인 측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풍경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아크물이었습니다. 몇달전 뉴스에 나온, 대학생들이 새로 발견한 마야 유적지가 두번째로 가장 규모가 큰 유적일거라고 하는데요. 아크물이 바로 첫번째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곳이 좋았던 이유는 규모 때문이 아니라 정글 깊숙이 감춰진 듯 숨겨진 그 모습, 주변 풍광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외진 곳에 있어 그런 규모와 아름다움이 있음에도 방문객 숫자가 현저히 적었는데요. 저도 그래서 어렵사리 방문했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이곳을 볼 수 있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이 지역의 모든 마야 유적지를 기차로 연결하는 멕시코의 야심찬 프로젝트, '트렌 마야'를 아시나요? 지금은 버스로 힘들게 방문해야하는 대부분의 유적지들을 기차로 쉽게 이동하며 볼 수 있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미 일부 구간이 개통되었는데, 바로 이 곳 아크물에도 기차가 올거라고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근처에 기차역과 박물관이 열심히 공사중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을 편하게 마야 유적지를 찾게는 되겠지만, 이 트렌 마야를 위해 유카탄 반도의 정글을 많이 훼손하게 되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 10년 후에 이곳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유카탄 반도의 수도인 메리다에서 6일밤을 머무르며 근처 지역들을 탐험한 후 지금 바로 이곳, 툴룸에 왔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저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세노테'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지역의 특수한 지하 수영장이랄까요.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과 같은 지하 공간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곳들입니다. 마야인들도 이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 세노테를 찾아 수영을 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아마 백개는 족히 넘는 세노테들이 이 지역에 있을텐데, 거의 대부분이 관광지화 되었습니다. 어떤 곳들은 거의 워터파크처럼 꾸며져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떤 곳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며칠은 이 세노테들을 촬영하며 보냈습니다. 수영을 못해 물에는 몇번 들어가지 않았는데, 한두곳에서 물에 들어가보면 너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바닷물이 아니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단지 방문객이 너무 많을 때에는 정신이 없는 수준이라, 어디를 가든 아침 일찍 찾아 고요함 속에서 세노테를 즐겨보시기를 권해봅니다. 오직 새소리만 들려올 때 세노테에서 둥둥 떠다니는 경험, 아마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이 지역에서 리조트 수영장이나 바닷가를 가는 것보다 세노테를 가는게 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툴룸과 두시간 거리에 그 유명한 칸쿤이 있지만 저는 가지 않습니다. 오직 칸쿤 공항에만 가죠. 리조트로 가득한 그곳에 제가 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다음 목적지인 쿠바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쿠바는 2011년에 방문해 촬영했던 나라입니다. 두번 갈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칸쿤에서 쿠바까지 비행기로 한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한번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가항공인 비바 에어로버스를 타고, 아바나로 갑니다. 이번에는 13년전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던 쿠바의 동쪽 끝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도 가보려고 합니다.
13년의 시간 동안 쿠바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과연 이번에도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요? 설레는만큼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지만 너무 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긴 여행을 해내도록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무작정 가겠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겠습니다. 13년전 쿠바는 인터넷이 거의 되질 않았는데 이번엔 어떨지 모르겠네요. 가능하다면 다음주에 쿠바에서, 두번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라 레볼루시옹!
2024년 12월1일,
케이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