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일찍 마치게 된 여행.
조금 어색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코스타리카에서의 이야기를 전하고, 새로 도착한 니카라과에서의 사진을 기대해달라는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바로 니카라과 때문입니다. 이미 저에게 입국을 한번 불허했던 나라. 코스타리카에서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여기서도 문제가 있어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서양인들은 아무 문제가 없고 보지도 않는 입국 신청서를 온라인으로 미리 보내야한다고해서 이번에는 2주 전에 보내두었는데도 연락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국경으로 가서 시도하려고 했는데 미리 예약해둔 버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니카라과 이민국에서 제가 입국 허가를 받기 전에는 버스에 태우지 말라고 했다더군요. 사실 그렇게 미리 연락까지 해가며 버스를 태우지 말라 했다는게 굉장히 중미스럽지 않은, 이상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온라인으로 아무 답장도 안오는 이 상황에서 몇날며칠 기다릴 수 만은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면 문제가 없다고해서 비행기도 고려했지만, 사실 니카라과에서의 2주 정도 여정을 마치면 정말 가진 돈이 마이너스 수준이 되는 것이라.. 거기에 더하여 비행기표까지 산다는게 굉장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니카라과는 이번에 포기하기로 했고, 그렇게 한국으로 예정보다 2주 먼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며칠은 웬지 모르게 어색하다고 해야할까요. 원래 3월말에, 봄이 다 되어 한국에 돌아왔어야 하는데 아직도 추운 이 시기에 한국에 돌아오니 좋으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한.. 묘한 상태였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이렇게 가려던 곳에 가지 못하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와야 했던 적이 없었기에 더 복잡한 심경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중미에서의 여정은 코스타리카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졸지에 종착지가 되어버린 코스타리카에서의 이야기들을 그래도 나누고 싶네요. 첫 목적지는 라 포르투나라는 곳이었는데요. 아레날 화산이라는 코스타리카를 대표하는 화산이 있는 지역인데, 화산을 보고 주변 지역 관광을 위해 많이들 찾는 곳입니다. 사실 여기서부터 깜짝 놀랐다고 할까요. 코스타리카는 정말 관광지로 개발된 나라더군요. 중미에서는 가장 관광도시 느낌이었고 모든게 관광객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하와이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습하고 더운 날씨와 푸르른 자연. 렌트카로 주로들 여행하고 마을 중심지는 모두 투어 상품과 관광객을 위한 샵들로 가득한 모습에서 오아후 섬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미국인 관광객이 무척 많은 나라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사실 코스타리카는 자연이나 동물은 참 좋았지만 나라 자체로는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너무 디즈니랜드 같은 모습 때문에 말이죠. 반대로 얘기하면 중미에서 가장 여행 난이도가 낮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코스타리카는 쉽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라 포르투나에서는 자연도 좋긴 했지만 역시 나무늘보를 촬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코스타리카 나라 자체가 나무늘보를 보기 가장 좋은 나라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중에서도 라 포르투나는 나무늘보를 볼 수 있는 투어를 진행하는 사유지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브라질의 아마존에서 일주일 걸려 나무늘보를 딱 한번 봤었는데.. 여기는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더라고요. 물론 제가 운이 좋은 편이었던거지 원래는 그 정도까지는 쉬운게 아니라는 사실을 좀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4일 있으면서 대여섯마리의 나무늘보를 꽤 제대로 촬영했으니 여기 온 이유는 충분했던 셈입니다. 날이 너무 습하고 더워서 호스텔에서는 꽤나 힘들었지만 말씀드렸듯이 워낙 관광지화 된 곳이라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로 찾은 곳은 몬테베르데라는 곳이었는데요. 코스타리카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지역으로 해발 1500미터 정도 되어 날씨가 무척 선선합니다. 제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한가지 느낀게, 제가 어딘가 사는 장소를 고를 수 있다면 해발 150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살고 싶더라고요. 여름에도 덥지 않고 시원한 기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거진 숲들로 유명한 지역인데 그 자연을 한껏 만끽하는 것 또한 좋았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게 마음에 드는 사진은 담지 못했습니다. 사진가로서 종종 이런 경험을 하는데요. 아주 마음에 든 도시/지역인데 정작 사진은 별게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마음에 든 곳은 아닌데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도 하죠. 여행자로서 좋은 곳과, 사진가로서 좋은 곳은 늘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몬테베르데 지역에는 과테말라에서 봤던 아름다운 새 케찰이 서식하는 곳이라 그 새를 보기 위해 며칠을 투자했지만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새들도 별로 만나지 못했어요. 조류 가이드를 고용해서 돌아다녔지만 3일을 실패했고, 다시금 과테말라에서의 케찰이 정말 진귀한 경험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운이 없어서 그랬던거지 본 분들도 있긴 했습니다만.. 아마 과테말라의 케찰이 저와 케찰의 만남은 오직 과테말라로 남겨두려고 여기서는 못만나게 했나..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더 좀 제대로 담아보고 싶은 새였는데.. 코스타리카에서는 만나지 못했고, 이곳 몬테베르데에서는 그저 이 지역의 푸르름을 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아, 몇몇 허밍버드들과의 만남은 좋았습니다. 미 대륙에서만 만날 수 있는 벌새들은 정말 언제봐도 그 색감 때문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여행의 종착지, 마누엘 안토니오로 갔습니다. 원래 코스타리카에서 더 길게 있을 예정이었는데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여기를 종착지로 삼게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거의 미국화가 된 느낌의 관광지라 모든 비용이 너무 비쌌습니다. 어떤 캐나다인들은 캐나다보다 음식값이 비싸다고 놀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마누엘 안토니오는 코스타리카의 여러 국립공원 중에서도 아마 가장 유명한 곳인데요. 아름다운 대서양의 바다와 정글이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야생 동물들을 탐험하고 더하여 아름다운 바다에서 수영까지 할 수 있으니 관광객이 정말 많이 찾는 곳입니다. 코스타리카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았지만 마누엘 안토니오는 거의 디즈니랜드 느낌이었습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방문할 수 있게 아주 길게 도보를 깔아 두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죠.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새나 기타 야생동물을 보기엔 이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한때는 더 많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넘쳐나는 인기를 보면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여기 동물들이 있기는 쉽지 않겠다 했습니다. 원숭이들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 지역을 주름 잡고 있었습니다.
나무늘보 또한 사람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으니 이 국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스타일 수 밖에 없었는데요. 처음 갔던 라 포르투나 보다도 나무늘보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끔 만나도 높은 나무 등에 숨어서 동그란 모습만 보이지 얼굴은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나무늘보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홍보가 많이 되는데 정말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나무늘보만 보고 싶다면 아마 라 포르투나 지역에 가는게 더 확률이 높을 것 같더군요. 저는 여기 왔으니 나무늘보를 꼭 담고 싶어서 이틀 동안 이 공원을 방문해 하루종일 돌아다녔습니다. 첫날은 완전히 허탕을 쳤고, 둘째날도 거의 허탕 분위기라 포기하기 직전이었죠. 그런데 어딘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달려가보니 나무늘보 친구를 아주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높은 나무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 나무늘보가 땅까지 내려오고 있었던 것인데요. 알고보니 일주일에 한번 볼일을 보는 나무늘보가 마침 그 타이밍에 볼일을 보러 내려왔던 것입니다. 수십명의 인파가 몰려 열광하는 것이 딱히 이상적인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무늘보 친구를 가까이서 보고 담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마 이번 여정에서의 마지막 행운이 아니었나 합니다.
마누엘 안토니오는 워낙 유명 관광지라 숙소가 대부분 리조트 호텔이고 그래서 가격이 비쌉니다. 최대한 싼 곳에 있으려고 거리가 먼 호스텔에 자리 잡고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요. 시설이나 더위, 모기는 다 이해했지만 같은 방에 머무른 한 유럽 백인 할아버지의 몸에 냄새가 정말 심하게 나서 3일밤 내내 좀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씻지 않은 정도로 나는 냄새라고 믿기가 어려워 아무래도 몸 어디가 안좋으셔서 저런 냄새가 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요. 냄새가 난다고 뭐라할 수는 없으니 그냥 견딜 수 밖에 없었죠. 이런 것들이 호스텔 생활의 단점이긴 합니다만 역시나 그래도 비싼만큼 문명(?)국인 코스타리카여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게 너무 쉬운 느낌이라 코스타리카는 좀 재미가 없었달까요.
그렇게 마누엘 안토니오에서 시간을 마무리하고 수도인 산 호세로 돌아왔습니다. 원래 그날 밤 산 호세에서 심야 버스로 니카라과로 갈 예정이었죠.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버스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 버스를 탈 수 없다고 했고, 갑자기 산호세에서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카페도 가고 서점도 가고 중미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스타리카가 중미에서는 손에 꼽게 현대화된 곳이라 각종 관광 상품도 무척 잘 디자인이 되어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코스타리카는 온두라스나 과테말라만큼 정이 가진 않아 막 뭘 사고싶진 않더라고요. 온두라스에서 관광품을 사고 싶었는데 거긴 코스타리카와 반대로 너무 여행객이 없는 곳이라 세련된 관광품이 전무하다시피해서 아무 것도 사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산호세의 호스텔에서 이틀을 머무르다 결국 한국행을 결정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중미에서 한국까지 비행편이 굉장히 안좋아서 대부분 두세번을 환승해야하는데.. 운좋게 뉴욕에서 한번만 환승하면 되는 싼 비행기표를 찾아서 그래도 편히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환승 시간이 길었다면 13년만에 뉴욕을 좀 보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그렇게 텅 빈 통장을 안고 이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끝났지만 이렇게 이번 중미에서의 여정은 마무리합니다. 99개국에서 끝내는거였는데 98개국에서 끝났습니다. 100개국 촬영을 달성하기까지가 쉽지가 않네요. 아마 내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슬슬 이번 사진의 작업들을 정리하고, 여러분들에게 전달할 작품, 아트프린트, 엽서등을 제작하는 과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는 텀블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니 부디 메일을 잘 확인해주세요. 예상치 못한 시기에 이번 여정을 마치게 됐지만, 모두 여러분의 후원이 있었기에 5개월의 시간을 여행하며 사진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곧 사진을 전하기 위해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e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그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3월19일,
케이채 드림. |